유선 전화시대, 호출기를 거쳐 무선 통신 시대로 오는 동안 연인들의 만남의 형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호출기, 일명 '삐삐'가 등장하기까지 유일한 통신 수단은 유선 전화였다.

삐삐가 대중화되던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 연인들은 만나기 위해 특정 장소와 약소를 정해야 한다.
OOO 카페, XXX 앞 또는 YYY공원이나 AAA 레스토랑 등으로.

그렇기 때문에 만나는 장소까지 가는 동안 둘중 한쪽이 무슨일이 생겨 약속장소로 갈 수 없을 경우에 그 소식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만나는 장소 전화 번호라도 알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것마저도 없을 경우에는 친구를 대신 보내 사정을 이야기 하고 취소를 하거나 이도 여의치 않게 되면 결국 상대방은 바람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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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0년대 삐삐가 등장하면서 연인들의 만남의 행태도 일순간에 바뀌었다.

똑같은 장소라 하더라도 삐삐를 통해 번호를 찍으면 연락이 가능해 갑작스럽게 급한일이 있어도 상대방이 "언제 오려나"라는 마음으로 무턱대고 기다리는 일을 방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번호만을 알려주던 삐삐는 다시한번 진화를 한다.

바로 음성녹음 기능.
따라서 호출을 할일 도 없이 급한 일이 생기면 공중전화로 달려가 상대방 삐삐 번호를 입력하고 음성녹음을 하면 상대방에게 그 메시지가 전달하게 된다.

당시 삐삐 번호는 모두 앞자리가 서울이동통신의 012와 나래이동통신의 015가 있었다.
삐삐 한대당 가격은 다소 차이는 있겠으나 5만원에서 10만원사이였고 한달 사용료는 음성녹음이 없는 경우는 9천원 정도 추가를 하게되면 1만2000원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의 통화 요금으로 보면 당시 금액이 적은 것은 아닌 듯하다.
오로지 번호에 만 의존했기때문에 번호를 통해 메시지를 만드는 것도 유행이었다.

8282-빨리빨리
1004-천사
0404-영원히 사랑해 여원히 사랑해 등


지금보면 유치하겠지만 문자메시지가 없었던 시절이라 이러한 방법이 최신이었다.
삐삐의 대중화가 가져온 또 다른 변화는 카페의 좌석마다 전화기 비치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삐삐를 치기도 하고 전화가 오면 바로 연결해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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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카페가 '보디가드'로 한때 압구정동 오렌지족 이야기가 나올때 등장해, 신세대들이 모이는 곳에 체인점을 내며 급속도로 퍼져 갔다.

그리고 오늘 날의 무선 통신이 삐삐의 전성기던 1990년대 중반을 조금씩 잠식시키고 1998년경에는 PCS 3총사와 017이 기존 011과 함께 5대 통신 사업자로 본격적인 무선 통신시대를 개막했다.
휴대전화의 대중화로 연인들의 만남은 삐삐 시대에서 또 다시 탈바꿈 한다.

특별히 장소를 정할 것 도 없다. 그냥 보고싶으면 전화하고 시간 여부를 묻고 가능하면 만나고 아니면 말고.
물론 시간을 정해서 만나는 맥락은 같지만 유동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문자메시지로나 동영상 메시지로 상대방에게 자기의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게 됐고 화상통신까지 가능하니 유선 전화시대에서 상상도 못할 일들이 현실로 가능해진 셈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유선에서 삐삐로 그리고 무선통신인 휴대전화 시대의 연인들의 만남의 행태를 열거한 것은 삐삐의 추억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친구가 8282를 입력하고 호출하면 서둘러 내려 공중전화로 달려가 "012-XXX-XXXX 호출하신분좀 부탁합니다"라고 했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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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온달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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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는 이 2007/04/15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울이동통신이 아니라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입니다..
    서울이동통신은 015-2xx-xxxx, 나래이동통신은 015-3xx-xxxx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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